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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미켈란젤로

달빛그림자 2008. 6. 14. 09:04

미켈란젤로 부오노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 -1564) 는 1475년 아버지 로도비코와 어머니 프란체스카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0세때 피렌체 시내 프란체스코 울비노 학교에 들어가나 학교 공부보다 지옷토나 마사치오 그림을 모방해 스케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부친은 그들 가문에서 예술가가 나온다는 것을 가문의 수치라 여겼기 때문에 못마땅해 했다.

13살때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문하에서 3년간 도제 수업을 받았다. 기를란디오는 그 당시의 부유한 피렌체 시민 계급의 생활을 명쾌하고도 매력적으로 표현해준 화가이다.

그의 화실에서 미켈란젤로는 화가로서 갖추어야할 일반적인 교양과 기법을 특히 프레스코벽화의 확고한 기초를 쌓았다. 이때부터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미켈란젤로는 그 당시 피렌체풍의 세련된 미술을 거부하고 기념비적이고 강한 표현을 즐겨하게된다.

1489년부터 그는 당시 피렌체시의 권력자인 메디치가가 세운 조각학교에서 도나텔로 제자인 베르톨도로 부터 조각도 배우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1496년 로마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을 제작하고 피렌체에서는 '다비드'상을 1504년에 완성하여, 많은 사람들로 부터 찬사 를 받는다. 1512년에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에 '천지창조'를 4년여만에 완성했으며, 그 후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말년에는 건축에 몰두하여 '피터 성당'의 둥근 지붕 설계,'포타피아'에 대한 설계와 연구 등이 있으며 생존 마지막 기간 중에는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을 조각했는데 거의 죽어가는 순간까지 이 작품들을 조각하였다. 1564년 2월18일 미켈란젤로는 뇌일혈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이틀 전 플로렌스에 묻히기를 원하였기에, 로마의 성 아포스톨리 교회에서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플로렌스로 가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안치되었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어린시절 친구로 부터 입은 코의 상처가 그를 평생 독신으로 살게한 동기가 되었을 정도로 편협하고 외곬수적이었으나 자신의 생김새에 대한 열등감으로 오히려 아름다운 인체를 생명력이 넘치게 표출해 내는데 정열을 쏟아부었다
. ■

 

 

 조각

다비드(=다윗)
David

1501-1504년
대리석, 높이 410㎝
피렌체, 베키오광장

다비드(=다윗)는 구약성서 사무엘서 17장에 나오는 골리앗을 죽인 16세의 소년이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물매돌을 어깨에 둘러메고 강렬한 눈빛으로 골리앗을 노려보고 있는 싸움 직전의 긴장된 순간으로 표현했다. 르네상스 시대에 다비드를 주제로 제작된 도나텔로와 베록키오의 작품은 적장의 머리를 발로 밟고 선 모습이며, 적을 향해 돌을 던질려는 순간을 표현한 운동감이 뛰어난 베르니니 작품도 있다.

피에타
Pieta

1498-1499
대리석, 높이 171.6㎝
로마, 베드로 성당

피에타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그리스도를 끌어안고 슬픔에 잠긴 마리아의 모습을 말한다. 그리스도가 마리아보다 크지만 전체적으로 고요하고 엄숙하며 삼각형의 안정감있는 구성이다. 미켈란젤로가 마리아의 옷자락에 서명을 한 작품으로 유명하다.

모세
Mose

1513-1516년
대리석, 높이 235㎝
로마, 빈콜리, 산 피에트로 성당

미켈란젤로의 모세 상은 지혜의 상징인 성서를 겨드랑이에 끼고 15 ° 상단을 치켜 응시하고 있는 눈동자가 강렬하다. 이 작품은 율리우스 2세 묘의 중심에 자리해 있으며, 모세 상을 제외하고는 미켈란젤로의 제자 작품이다. 모세를 주제로 한 '모세의 우물'보다 더 널리 알려졌다.

박카스
Bacchus

1497-1498년
대리석, 높이 204.2㎝
피렌체, 바젤로 국립박물관

술을 맛보는 박카스와 어린 목신 새티루스가 포도를 훔치는 장면이다. 박카스는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술의 신이다.

죽어가는 노예 상
Dying Slave

1513-1516년
대리석, 229㎝
파리, 루브르 미술관

죽어가는 노예 상과 반항하는 노예 상은 율리우스 2세의 묘비를 위한 것이다. 죽어가는 노예 상은 잠자는 듯한 느낌을 주어 잠자는 노예 상이라고도 한다.

반항하는 노예 상
Rebellious Slave

1513-1516년
대리석, 215㎝
파리, 루브르 미술관

반항하는 노예 상은 어가는 노예 상과 율리우스 2세의 묘비를 위한 것이다. 반항하는 노예 상은 헬레니즘의 영향이 보이는데, 이것은 1506년 발굴된 그리스 조각 라오콘군상의 영향을 받은 것 으로 보인다.

줄리아노 데 메디치 묘
Tomb of Giuliano de' Medici

1526-1534년
대리석
피렌체, 성 로렌초 대성당

네무르스의 공작 쥴리아노와 울비노의 공작 로렌초의 묘소는 서로 마주보고 있으며 쥴리아노의 석관 위에는 밤과 낮을 의미하는 남성상과 여성상이 있다. 그 위에 쥴리아노 상이 있다. 쥴리아노 묘의 밤과 낮, 로렌초 묘의 새벽과 황혼은 하루를 상징한다.

줄리아노
Statue of Giuliano de' Medici

1526-34년
대리석, 173㎝
피렌체, 성 로렌초 대성당

줄리아노는 인간의 구원과 육체적인 활동을 표현한 것으로 다비드 상에서 보여준 이상화와 발랄한 모습을 나태내고 있으며, 신체적 표현상 모세와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 고대 로마의 장군복을 입고, 오른손에 지휘봉을 잡은 자세에서 고개를 왼편으로 돌리고 있다. 그러나 건강한 신체에 비하여 긴 목과 정신적 유약함이 드러나는 얼굴은 깊은 우수와 연민의 정을 느끼게하는데, 이는 젊은 나이에 암살당한 그의 비극적인 생애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승리
Victory

1520-1525년
대리석
피렌체, 베키오광장

노인을 발 아래 밟고 있는 남성 누드상으로 노인으로 상징되는 시간에 대한 승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이 된다. 미완성 작품이다.

계단의 성모
Madonna of the Stairs

1490년
대리석
피렌체, 카사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가 로렌초 데 메디치의 후원으로 조각 공부하던 초기의 작품이다. 마리아의 젖을 먹고 있는 듯한 모습의 그리스도를 품고 계단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반 이상을 차지하며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회화

성 가족
The Holy Family with the infant St. John the Baptist

1503-1506년
템페라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안제로 도니와 막달레나 스토롯치의 결혼 기념으로 만들어진 미켈란젤로 최초의 회화 작품.

최후의 심판
Last Judgment

1537-1541년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은 그림 내용이 위로 부터 네 부분으로 구분된다. 위쪽인 1부에는 천사들, 2부는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12사도와 순교한 성인들로 이루어진 천국, 3부는 연옥.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죽은 자들을 깨워서 심판을 받게한다. 좌우에는 천국과 지옥으로 가는 장면, 4부는 지옥 모습. 그리스도 오른 쪽 아래에 사람 가죽을 들고 있는 사람이 있다. 가죽 속의 얼굴 모습은 미켈란젤로 자화상이다.

누드습작
Nude drawing

1506년
황갈색 종이, 빨강분필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시스티나 천정화 중 리비아 무녀를 위한 습작이다. 이 스케치북의 소묘를 통하여 미켈란젤로가 모델의 모든 세부를 세심하게 연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울의 개종
The Conversion of Saul

1542-1550년
프레스코
바티칸, 파올리나 성당 천장부분

이 그림은 스타일적으로는 '최후의 심판'과 관련이 있다. 이 그림은 미켈란젤로가 75살에 그린 가장 마지막 작품이다. 타르소의 세리(稅吏)성 바울(후에 바오로)이 그리스도 교도들을 탄압하고 다마스코스로 그리스도 교도들을 체포하러가는 순간 갑자기 하늘로 부터 강한 빛이 비치자 눈이 멀게되어 말에서 떨어지면서 신의 소리를 듣는 극적인 장면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 예수님은 원근법에의해 그려지고 있고, 겁에질린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는데 이 것은 시스틴 성당의 천정화와 유사하다.

십자가에 처형되는 성 베드로
Crucifixion of Saint Peter

1542-1550년
프레스코
바티칸, 파올리나 성당

<최후의 심판>이 완성된 다음해인 1542년 파올리나 성당의 벽화 장식을 시작했다. 파올리나 성당의 벽화는 <사울의 개종>과 <십자가에 처형되는 성 베드로> 두 테마로서 두개의 작품으로 되어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화에 비하면 훨씬 작지만 연로한 미켈란젤로는 이 작품을 완성시키는데 8년이나 걸렸다.

다비드와 골리앗의 싸움
David and Goliath

1534-1541년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사탄에 대한 크리스트의 승리를 의미하는 이 그림은 피라미드 구성이다. 골리앗 위에서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다비드의 승리자로서의 자세는 <승리>의 상과 유사함을 갖고 있다.

젊은이
Ignudi

1508-1512년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예배당) 천정벽화 중 아담과 하와의 창조 장면이 연결되는 중간에 화면 변화의 효과적 처리로서 설정한 두 청년 상 중 하나다.

델피의 무녀
The Sibyl of Delphi

1508-1512년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의 천지 창조 천정화에 등장하는 5인의 무녀들 중 나이가 가장 어린 델피의 무녀는 죽은 자의 영혼의 떨림의 소리를 전하는 의무를 지닌 그녀의 입술이 아름답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예언의 두루마리를 감아 올리고 있으며, 주시하는 눈빛과 휘날리는 망토는 강렬한 영감을 느끼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아담의 창조
The Creation of Adam

1508-1512년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중 아담의 탄생을 표현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누워있으며 반대편에서는 하느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타나 손을 뻗치자 아담의 손가락에 채 닿기도 전에 이 최초의 사람은 깊은 잠에서 막 깨어난 듯 그의 창조주인 하느님의 자애로운 얼굴을 쳐다보고 있다

예언자 예레미아
The Prophet Jeremiah

15081-1512년
프레스코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늙은 예레미아는 시스티나 성당의 천정화 인물들 가운데 가장 우울하게 비탄에 빠진 모습으로 벽에 그려져 교황의 옥좌를 내려다 보고 있다. 예레미아도 다니엘처럼 감옥에 투옥되지만 기적적으로 탈출한 것이 부활을 예고하는것으로 간주되었다

미켈란젤로 부오노로티(Michelangelo Buonarroti 1475 -1564) 는 1475년 아버지 로도비코와 어머니 프란체스카 사이에서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10세때 피렌체 시내 프란체스코 울비노 학교에 들어가나 학교 공부보다 지옷토나 마사치오 그림을 모방해 스케치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부친은 그들 가문에서 예술가가 나온다는 것을 가문의 수치라 여겼기 때문에 못마땅해 했다.

13살때 부친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도메니코 기를란다이오 문하에서 3년간 도제 수업을 받았다. 기를란디오는 그 당시의 부유한 피렌체 시민 계급의 생활을 명쾌하고도 매력적으로 표현해준 화가이다.

그의 화실에서 미켈란젤로는 화가로서 갖추어야할 일반적인 교양과 기법을 특히 프레스코벽화의 확고한 기초를 쌓았다. 이때부터 독특한 개성을 나타내기 시작한 미켈란젤로는 그 당시 피렌체풍의 세련된 미술을 거부하고 기념비적이고 강한 표현을 즐겨하게된다.

1489년부터 그는 당시 피렌체시의 권력자인 메디치가가 세운 조각학교에서 도나텔로 제자인 베르톨도로 부터 조각도 배우게 된다. 미켈란젤로는 1496년 로마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상'을 제작하고 피렌체에서는 '다비드'상을 1504년에 완성하여, 많은 사람들로 부터 찬사 를 받는다. 1512년에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정에 '천지창조'를 4년여만에 완성했으며, 그 후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말년에는 건축에 몰두하여 '피터 성당'의 둥근 지붕 설계,'포타피아'에 대한 설계와 연구 등이 있으며 생존 마지막 기간 중에는 '론다니니의 피에타' 등을 조각했는데 거의 죽어가는 순간까지 이 작품들을 조각하였다. 1564년 2월18일 미켈란젤로는 뇌일혈로 숨을 거두었다.

그는 죽기 이틀 전 플로렌스에 묻히기를 원하였기에, 로마의 성 아포스톨리 교회에서 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른 후 플로렌스로 가서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에 안치되었다. 조각가 미켈란젤로는 어린시절 친구로 부터 입은 코의 상처가 그를 평생 독신으로 살게한 동기가 되었을 정도로 편협하고 외곬수적이었으나 자신의 생김새에 대한 열등감으로 오히려 아름다운 인체를 생명력이 넘치게 표출해 내는데 정열을 쏟아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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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naipun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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