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음악과 글

아무것도 아닌 것들 / 류시화

달빛그림자 2009. 1. 28. 21:32




   아무것도 아닌 것들 / 류시화

   여기에 둥근 기둥이 있어 아무도 그것을 둘러가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흙 위에 솟아나온 뿌리가 있어
   그것은 방향 없는 눈
   아무것도 아닌 것

   발에 채인다 여기
   모든 흐름을 멈추게 하는 것
   빛을 갉아먹는 황금색
   벌레들
   아무것도 아닌 것들

   새삼 사랑을 공개할 필요는
   없으리라 눈 위에 눈 위의 감시자들에게 새삼
   나의 애인을 들추어 낼 까닭은 없다
   여기
   하늘에서는 조용히 구름이 날고 이미
   이전에 왔던 이가 또 소리친다
   이제 곧 종말이 오리라 알지 못하는 사이에
   그렇게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가 온 곳으로 되돌아가는 도중에 있음을
   안다
   눈 속의 감자들, 감자의 죽은
   눈들

   우리는 소리 없이, 줄지어
   검은 나무들 아래로 지나간다
   안개, 기둥들,
   들리지 않는 소리들
   한때 눈 속에 파묻혀 있던
   것들, 눈을 아프게 하는 것들

   여기에 멈추지 않는 흐름이 있어 우리와 함께
   지나간다
   소리지른다, 언제나 들리는
   소리들
   여기에 우리가 서 있어 아무도 우리를 구속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여기에 찬란한 기둥들이 서 있어 아무것도
   우리의 찬양을 받지 못한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
   - j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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