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 100년...시인 100명이 추천한 애송詩 100편 중(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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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는 먼 집
- 허수경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단풍의 손바닥, 은행의 두갈래
그리고 합침 저 개망초의 시름,
밟힌 풀의 흙으로 돌아감
당신……,
킥킥거리며 세월에 대해
혹은 사랑과 상처,
상처의 몸이 나에게 기대와 저를 부빌 때
당신……,
그대라는 자연의 달과 별……,
킥킥거리며 당신이라고……,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에 기대
마음의 무덤에 나 벌초하러
진설 음식도 없이 맨 술 한 병 차고 병자처럼,
그러나 치병과 환후는 각각 따로인 것을
킥킥 당신 이쁜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내가 아니라서 끝내 버릴 수 없는,
무를 수도 없는 참혹……,
그러나 킥킥 당신
(199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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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떻게 '당신'이 되는가. 허수경(44) 시인은
"그대라는 자연의 달이 나에게 기대 와 저를 부빌 때"라고 한다.
'사내'가 아름다울 때, 그 아름다움에 기댈 수 있을 때 '당신'이
되기도 한다. 부빈다는 것, 기댄다는 것, 그것은 다정(多情)이고
병(病)이기도 할 것이다.
나는 병자처럼 당신을 묻은 마음의 무덤에 벌초하러 간다.
사실은 슬픔으로 이어진 '살아옴의 상처'와, 금방 울 것 같은
'사내의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한 병의 맨 술을 마시는 중이리라.
백수광부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을 훌쩍 건너가 버린 당신! 당신이
먼저 당도해버린 그곳은 나 또한 혼자서 가야 할 먼 집이다.
그러니 남겨진 나는 참혹할밖에.... 후략
정끝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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