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음악과 글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달빛그림자 2009. 1. 28. 17:59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 j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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