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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귀도 레니 (Guido Reni) -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

달빛그림자 2008. 6. 9. 20:59

 

 

 

                                                                                                                         귀도 레니

 

 

 

 - 베아트리체 첸지의 초상 'Portrait of Beatrice Cenci' 1620∼1621 
  
1577. 2. 6 로마~1599. 9. 11 로마. 로마의 젊은 귀부인. 첸치,   Guido Reni 유화, Galleria in Roma 



 

그림의 주인공인 [베아트리체 첸지]는 16세기 경 이탈리아 로마에 실존했던 [프란체스코 첸치] 라는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소유한 교활하고 포악한 로마 귀족의 두번째 부인에게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다가 14세가 된 [베아트리체]가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처녀로 성장하자 아버지[프란체스코]는 그녀를 아무도 보지 못하게 저택의 한 방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어느날 밤... 마침내 베아트리체의 육체를 잔인하게 빼앗아 버렸습니다. 아버지에게 농락당한 [베아트리체]는 가슴에 깊은 상처을 품고 언젠가 복수해 주리라고 마음속으로 맹세합니다. 그 후 아버지는 2번째 아내 [루크레치아]와 [베아트리체 첸치]를 아퀼라 지방에 있는 외로운 성 [라 페트렐라]에 가두었으며 두 사람은 거기서 모진 학대를 받았습니다. 급기야는 그녀를 동정했던 어머니와 오빠 [자코모] 그리고 그녀에게 반해있던 집사 [칼베티]의 도움으로 2년이 지난 1598년 9월 9일밤에 마침내 아편으로 아버지를 잠재워서 죽여 버리게 됩니다.

 

일이 끝나고 어머니와 딸은 [프란체스코]의 시체를 사고처럼 보이게 하려고 발코니에서 내던져버렸습니다. 그 후 자유를 얻기 위해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스페인 카스티야 지방민 올림피오 칼베티와 비밀리에 교섭하여 도피처를 발견했습니다만 진상이 곧 밝혀져 첸치 집안 전체가 체포당하고 [루크레치아][자코모][베르나르도]와 그밖의 형제들은 범행을 실토했습니다. [베아트리체] 역시 처음에는 고문을 당하면서도 모든 것을 부인했으나 끝내 범행을 자백하고 말았습니다. 당시 이들의 딱한 사정을 안 많은 사람들의 피고들을 구하기 위한 노력이 많이 시도되었으나 교황 [클레멘스]가 사면을 허락하지 않아 [베아트리체][루크레치아][자코모]는 사형에 처해졌고 [베르나르도]만이 어리다는 이유로 죽음을 면했습니다. 첸치 가문의 재산은 모두 몰수되었는데 소문에 따르면 이는 교황이 첸지 가문의 재산을 노리고 일부러 그들을 파멸시킬 목적에서 행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처형 당일, 로마의 산탄젤로교 앞의 광장 (지금의 천사의 성 정문 인듯 합니다.)에 단두대가 설치되고 전 이탈리아에서 수천명의 구경꾼이 모여듭니다. 절세의 미녀라는 [베아트리체]를 한번이라도 보려는 것이었죠. 이자리에는 당대의 예술가였던 [카라바죠]와 작품의 화가였던 [귀도레니]도 있었답니다. [베아트리체]는 조용히 기도를 올리고는 가볍게 단두대로 올라가 도끼 아래 그 하얗고 가느다란 목을 내밀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기도는 [주님! 성모마리아님!] 이었다고 합니다. 이때 그녀의 나이는 불과 22세였으니 아버지를 살해하고 난 뒤로 8년동안은 감옥에서 보냈던 듯 합니다. 

 

실로 세상의 모든 슬픔을 가지고 떠나는 여인이 아닐 수 없었던 것 입니다. 지금도 남아 있는 귀도 레니 작의 [베아트리체]의 초상은 단두대를 오르기 직전의 그녀를 화폭에 담은 것인데,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이 작품속의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해서 마침내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첸치 일가족》을 썼다고 합니다. 스탕달 신드롬 [Stendhal Syndrome] 이란 말은 여기서 시작된다고 하는데요. 이는 예술 작품을 읽거나 볼 때, 혹은 들을 때 그 아우라로 인해 정신을 잃는 현상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 당시에도 [베아트리체]는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음으로써 사람들의 동정을 많이 샀고 그 후 셸리의〈첸치 The Cenci〉(1819)와 알베르토 모라비아의〈베아트리체 첸치 Beatrice Cenci〉(1958) 등 수많은 시·희곡·소설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이 작품에서 저는 그녀를 단순히 아름답게만 볼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숨이 멎을 만큼 아름답고 청순한 모습도 느낄 수 있습니다만 이 작품 만큼은 아름다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그녀의 처연한 표정과 슬픈미소가 저희를 짖누릅니다. 그녀는 깊은 연민을 느끼게 하면서 말할수 없는 슬픔과 쓸쓸함을 지닌채 누군가를.. 혹은 더 있어야 했을 세상을 마지막으로 응시하는 듯 합니다. 사연을 알고 이 그림을 오래도록 대하고 있노라면 누구나 마음이 무거워짐을 느끼게 됩니다. 

 

자신의 꿈도 펼쳐보지 못하던 어린 나이에 아버지에게 유린당해야 했던 그녀의 운명은 삶 그 자체가 고통이었을 테죠. 이런 삶을 대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참담함을 느끼곤 합니다.  인간은 때론 동물과도 같아서 육체적 본능을 느끼게 되면 그것을 억제하지 못하고 그대로 욕망을 분출하게 되는데요. 그러나 인간이기에 윤리와 이성을 판단할 수 있으며 이것이 제어가 안될때에는 부끄러움과 죄의식을 느끼게 됩니다. 하물며 아버지가 딸을 대상으로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이기를 거부한 행동입니다. 가끔은 타인이 누군가의 도덕적인 삶의 태도를 좋게 평할 때마다 저는 늘 같은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인간은 누구나 본능과 욕망을 품고 있지만 단지 이성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인내하여 스스로를 통제하는 정도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쉬고 싶고 즐기고 싶고 욕망을 채우고 싶습니다. 저 역시 그런 욕망은 누구못지 않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에 평화와 안정이 찾아오려면 대개는 하고 싶은 일보단 해야 할 일을 우선해야만 합니다. 이것들이 저를 가끔씩 혼란스럽게 하고 힘들고 지치고 피곤하게 하죠. 그럴때마다 우리는 일탈을 꿈꾸고 삽니다. 어쩌면 우린 또 다른 형태의 [프란체스코 첸지] 인지도 모릅니다. 그가 [베아트리체]에게 했던 형태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의 폭력을 가하고 있지는 않을까요?  아이의 희망이나 장래를 고려하지 ?고 자신의 욕망을 아이를 통해 채우려는 맹목적인 부모의 행태나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타인을 대상으로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심리는 어쩌면 그녀의 아버지와 본질적으로 같은 마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마음이 평소 제가 타인에게 무엇이든 강요하는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고 그로 인해 때론 마음이 약하고 정에 이끌린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 이유인지도 모르겠습니다.여튼 제겐 타인에게 무엇을 강제한다는것 혹은 강제 당한다는것 만큼  싫은 일도 없을 듯 합니다.

 

이 초상은 두려움에 싸인 그녀의 심리를 관람자의 연민으로 연결시킨 화가 귀도 레니의 탁월한 솜씨에서 비롯한다고 봅니다. 미술사에는 종종 이런 천재 화가가 등장합니다.등을 약간 관람자를 향한 채 몸을 틀어 관람자를 바라보는 구성은 어쩌면 레니가 먼저 시도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아트리체가 16세기의 소녀였다면 레니가 25살 이전에 이 그림을 그린 것이 되는데, 젊은 나이에 이런 훌륭한 그림을 그렸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귀도 레니Guido Reni(1575~1642)는 17세기 이탈리아를 대표할 만한 화가로서 색의 귀재이며, 우아한 선, 구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특기할 만한 장점은 자연주의와 고전주의를 이상화시키는 것을 혼용한 것으로 이탈리아 회화에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교황의 초상에서도 보듯 그는 모델의 심리를 사뭇 예리하게 드러나게 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습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매우 감성적입니다. 본능적인 인간의 감성에 호소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볼로냐 태생의 레니는 로도비코 카르라치[Lodovico Carracci]로부터 수학했으며 1600년경 로마로 갔습니다.이 그림은 1600년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는 로마에서 활약하면서 독자적인 대가의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는 명암을 적절하게 이용하여 모델을 극중의 한 장면으로 묘사했는데 바로크 회화의 선구자 였던 카라바조 스타일의 명암을 그의 작품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이 작품을 둘러싼  여러가지 가설이나 주변 상식입니다.
첫번째는 스탕달 신드롬의 또 다른 유래 입니다. 어떤것이 정확한지는 저도 확실히 모르겠네요.제 생각엔 [베아트리체] 에서 연유했던 말이 오히려 아닌 듯도 하구 뭐 그렇습니다. 추후 좀더 공부해봐야 겠습니다.


♣ 스탕달 신드롬 [ Stendhal syndrome ]의 다른유래프랑스의 `적과 흑'의 작가 스탕달(Stendhal)이 187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 있는 산타크로체성당에서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오던 중 무릎에 힘이 빠지면서 황홀경을 경험했다는 사실을 자신의 일기에 적어 놓은 데서 유래한다.

 

두번째는 어떤 자료에는 위의 작품이 [귀도 레니]의 작품이 아닌 그의 제자의 작품이라고 합니다. 레니의 작품은 조금더 섬세한 그림인데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이것도 확실치는 않지만 신빙성이 있는 듯 하구요.

  

세번째는 제 페이퍼에서 두번이나 언급한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라는 작품과 정말 비슷한 포즈로 그려진 작품인데 작품은 이 작품이 60년 이상 앞선 작품입니다. [베르메르]가 [귀도레니]의 작품을 참고로 그린건 아닌지도 모르겠네요.

여러분도 비교해 보십시오.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아는 널리 알려진 [단테] 가 사랑했던 여인 [베아트리체]는 이 여인과는 동명이인입니다.
착오없으시길..

 

 

 

 

 

출처 : 화타 윤경재
글쓴이 : 화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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