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문학기행

문학기행 / 담양

달빛그림자 2009. 12. 11. 00:32
 

▒ 문학예술산행
▒ 불타는 명옥헌과 두 날개 활개치는 무등산
▒ 최두석과 황지우 그리고 담양

창밖으로 하나 둘 대밭이 눈에 띠는 걸 보니 담양에 들어온 줄 알겠다. 담양은 그 기후조건으로 인해 대대로 대나무가 풍성한 곳이다. 대나무는 오뉴월 쑥쑥 죽순이 나온 이후 20∼40일만에 다 자라버린다. 그 후 수년간 오직 단단해지기만 한다.

고대사회부터 인간들은 대나무의 속성을 간파했다. 대의 단단한 성질은 활과 창으로 변했고 텅빈 속은 피리와 대금으로 둔갑했다. 무기와 악기는 대나무를 통해 나타난 가장 극단적인 인간사회의 속성이다. 고대국가를 정립한 삼국은 끊임없는 전투를 벌였고 대밭들은 점점 쑥대밭이 되었다.

「삼국유사」에 나오는 <만파식적(萬波息笛)> 은 낮에는 두 개로 보이고 밤에는 하나로 보이는 신기한 대나무를 베어 만든 피리다. 신라 신문왕이 이것을 불었더니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낫고 가뭄에는 비가 내리고 거대한 풍랑은 잠잠해졌다고 한다. 이 설화에 의하면 악기는 전쟁 중에 발명된 것으로 추정된다. 아군에게는 서로의 신호로, 적군에게는 두려운 소리로, 그리고 백성들의 고달픔을 위로하는 구슬픈 노래로.

대꽃이 피면 대나무는 죽는다

담양은 300여 년 동안 닷새마다 끝수가 2와 7이 되는 날 전국에서 가장 큰 죽물장이 섰다. 키, 발, 자리, 소쿠리, 바구니, 삿갓, 참빗, 붓대, 죽부인… 대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물건들이 새벽 어스름을 뚫고 담양읍 관방제 아래 공터로 집결했다. 지금은 플라스틱과 중국산에 밀려 형편없이 초라해졌지만 일제 때는 담양이 개성 다음으로 많은 세금이 걷히기도 했었다.

지금의 손바닥만한 장도 내리는 비 때문에 서질 못했다. 이제 죽물장은 과거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이것을 예감하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대밭에서 자라난 담양 출신 최두석 시인은 담양장에 관한 아련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장의 김삿갓은 죽고
참빗으로 이 잡던 시절도 가고
대바구니 전성 시절에

새벽 서리 밟으며 어머니는 바구니 한 줄 이고 장에 가시고 고구마로 점심 때운 뒤 기다리는 오후, 너무 심심해 아홉 살 내가 두 살 터울 동생 손잡고 신작로를 따라 마중 갔었다. 이십 리가 짱짱한 길, 버스는 하루에 두어 번 다녔지만 꼬박꼬박 걸어오셨으므로 가다보면 도중에 만나겠지 생각하며… (중략)… 캄캄한 어둠에 동생은 울고 기진맥진 한밤중에야 호롱 들고 찾아 나선 어머니를 만났다. - 어머니는 그날 따라 버스로 오시고

아, 요즘도 장날이면
허리 굽은 어머니
플라스틱에 밀려 시세도 없는 대바구니 옆에 쭈그려 앉아
멀거니 팔리기나 기다리는 담양장
- <담양장> 중에서

시인의 유년의 기억 속에는 담양장의 파란만장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죽물장은 시대에 따라 히트 상품을 냈는데, 첫 번째가 삿갓이다. 그래서 예전 죽물장을 ‘삿갓점 머리’라 불렀다. 그 다음이 담양에 사는 가난한 할머니가 처음 만들었다는 참빗, 마지막이 소쿠리라 부르는 대바구니다. 또 시인은 <대꽃>이란 제목으로 연작시를 썼는데, 대꽃은 참으로 희한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한 송이 피면
또 한 송이 거품 뿜으며 피고
이꽃 저꽃 저꽃 이꽃 우르르우르르 무리져 피는
피다가 모두 죽는 대꽃.
-<대꽃8> 중에서

대나무의 대표종 왕대는 60년 주기로 꽃이 피는데, 하나가 꽃이 피면 우르르 흰 꽃을 피우다 결국은 말라죽어 대밭은 망한다고 한다. 담양의 노인들은 대꽃이 피면 ‘전쟁이 일어날’ 불길한 징조로 알고 있다. 최두석의 상상력은 흉흉한 대꽃에서 전봉준과 농민군을 불러온다. 그것이 <대꽃> 연작이다. 1894년 들불처럼 일어난 농민군들의 손에는 죽창이 들려있었다. 그들은 한 두 명이 떨쳐 일어나자, 마치 대꽃처럼 무리 지어 피었던 것이다. 한 때 전주성을 무혈입성, 위정자들을 벌벌 떨게 했던 농민군은 서울로의 북상 기회를 놓치고, 결국 신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과 조선 군대의 대포와 총알에 맞아 모두 죽었다.

명옥헌의 화산 폭발

담양에서 고서로 이동, 고서사거리 신호등에 딱 걸리면 마음은 늘 설렌다. 창평 방향으로 직진하면 명옥헌이 기다리고 있고, 우회전하면 소쇄원을 비롯한 무수한 정자와 원림(園林)이 흩어져 반짝이고 있기 때문이다. 8월 명옥헌처럼 화려한 곳은 없다. 예상대로 배롱나무 스무 여덟 그루가 연못과 정자를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로 일제히 꽃을 피웠다. 이곳은 불(火)과 색(色)의 낙원이다. 이 낙원에서 황지우 시인이 한 시절을 살았다.

폭발을 마치고
난분분한 붉은 재들 흩뿌리는데
나는 이 우주 잔치가 어지러워
연못가에 眞露 들고 쓰러져버렸네
-<물 빠진 연못> 중에서

만개한 8월 자미꽃,
부채 바람 받는 쪽의 숯불처럼
나를 향해 점점 밝아지는데
저 화엄탕에 발가벗고 들어가
생을 바꿔가지고 나오고 싶다
-<나의 연못, 나의 요양원> 중에서

그는 명옥헌 바로 앞 농가를 개조해 살았으니, 정원이 자기거나 마찬가지였다. 회화적 감각이 탁월한 황지우 답게 배롱나무꽃을 ‘화산재’와 ‘숯불‘로 비유하는 솜씨를 어느 누가 따라가겠는가. 그는 8월의 명옥헌 정원에서 공(空)과 색(色)이 하나인 ‘화엄의 세계’를 본다. ‘색의 세계’, 즉 화산 폭발처럼 뿜어내는 배롱나무꽃 앞에서 진로 소주를 몸에 붓고 같이 활활 타오른다. 또 타오르다 자신의 생(生)을 송두리째 바꿔 버리고 싶은 ‘공의 세계’에 도달한다. 결국 황지우는 이곳에서 80년 광주의 노여움을 치유하는 <화엄 광주>를 쓰고 정원을 떠났다.

소스라치게 아름다운 소쇄원

고서사거리에서 소쇄원으로 가는 887번 지방도는 무등산 북쪽 능선이 인간의 마을로 내려오는 길과 지곡리에서 만난다. 이 길에는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독수정, 풍암정 등 정자와 원림이 그득하고, 그것에 호응하여 가사와 시조문학이 꽃 피웠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식영정을 배경으로 쓴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이다. 이곳 증암천 상류 계곡을 예전에는 자미탄(紫薇灘), 즉 ‘배롱나무 여울(계곡)’이라 불렀다. 개울가에 가로수처럼 배롱나무들이 도열해 있었기 때문이다.

자미탄은 1976년 영산강 유역개발 중의 하나인 광주댐이 들어서면서 모두 사라졌다. 당시 꽃이 피면 계곡은 화산 폭발로 흘러내리는 용암, 그 자체였을 것이다. 다만 8월의 명옥헌을 통해 상상할 뿐. 그래서 명옥헌은 소중하고 고맙다. 뭇 정자와 원림 중에서 압권은 단연 소쇄원이다. 이 낙원을 꾸민 사람은 중종 때의 처사(處士) 양산보(1503-1557)다. 그는 17세에 조광조의 문하에 들어가 중앙정치에 뜻을 두고 있었다. 조선의 16세기는 정치적 격동기였다.

중종의 총애를 받던 조광조의 개혁은 훈구파의 밀려 좌절됐고 그에게는 유배와 사약이 떨어졌다. 스승이 죽자 양산보는 지체없이 낙향, 어렸을 때 멱감았던 계곡에 10년 동안 건물을 짓고 연못을 팠다. 그곳이 소쇄원이다. 이곳 입구는 대밭이 양편에 도열하고 있다. 조선시대 선비가 대밭으로 갔다는 것은 은둔을 상징한다. 이 낙원에 건설되자 면앙정 송순, 고봉 기대승, 하서 김인후, 송강 정철, 제봉 고경명, 석천 임억령 등 당대의 명문(名文)들이 모여 시를 읊고 사상을 논했다. 그 중 김인후는 뻔질나게 낙원에 출입했고, 한번 들어오면 발병난 것처럼 여러 달 동안 돌아갈 줄 몰랐다.

창이 밝으면 책을 읽으니
물 속 바위에는 책이 어리 비치네
한가함을 따라서 생각은 깊어지고
비잠(飛潛)의 경지로 드는 시구절(詩句節)
- 「사십팔영((四十八詠)」중 <침계문방(枕溪文房)>

그의 소쇄원에 대한 애정은 「소쇄원 사십팔영((四十八詠)」에 집약된다. 이 시는 소쇄원의 48군데 명승을 예찬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자연과 인생의 도(道)를 투영하고 있다. 인용한 시는 그 중 두 번째인데 계곡 위에 위치한 광풍각에서 책을 읽는 화자가 눈에 선하다.

두 날개를 활짝 핀 무등산

담양의 정자와 원림을 정거장처럼 멈췄다 가는 길의 종착지는 무등산이다. 무등산은 광주, 담양, 화순에 몸을 부리고 있지만, 광주 시민들이 이 산에 갖는 친화력은 놀랍다. 북한산을 가진 서울과 금정산을 가진 부산 사람들보다 관계가 돈독해 보인다. 오죽하면 야구선수 선동열의 별명이 ‘무등산 폭격기’일까. 장불재에 서자 몸을 뚫고 지나가려는 듯 심한 바람이 불었다. 어느 해 겨울 황지우는 저녁에 눈보라를 맞으며 원효사쪽에서 무등산을 올랐다.

원효사 처마끝 양철 물고기 건드는 눈송이 몇 점,
돌아보니 동편 규봉암으로 자욱하게 몰려가는 눈보라
눈보라여, 오류 없이 깨달음 없듯,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사람은 지금 후회하고 있는 사람이다.
마침내 모든 길을 끊는 눈보라, 저녁 눈보라,
다시 처음부터 걸어오라, 말한다.
- 황지우 <눈보라> 중에서

무등산을 오르며 황지우는 자신의 현재 모습에서 환멸을 느낀다. 시인의 뺨을 때리는 눈보라는 세상과의 모든 길을 끊고 오직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응시하게 만든다. 그 길을 쳐다보며 후회하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생을 돌아보라고 권유한다. 무등산의 절경 입석대를 지나 서석대에 섰다. 북쪽 멀리 광주호가 눈에 들어온다. 그 주변의 정자와 원림을 거쳐 예까지 온 것이다. 정상 삼봉인 천왕 지왕 인왕봉은 오래 전부터 공군기지와 들어서 출입금지 지역이다.

저 군사지역으로 무엇보다 답답했던 것은 무등산일 것이다. 그리고 광주 시민들도 무시로 안타까운 발걸음을 돌렸을 것이고. 황지우의 시구절처럼 ‘무등산이 비로소 두 날개 쫘악 펴고’, 훨훨 마음껏 날개짓 할 날은 언제일까. 그 때에는 80년 광주의 아픔과 상처를 품고 사는 사람들 마음속에 웅크리고 있는 증오와 미움도 모두 사라질 것이다. <글|진우석 사진|장병희 기자>

이번 여행의 여정은 담양의 무수한 정자들을 디딤돌 삼아 무등산에 오르는 것이다. 정자와 원림 답사는 담양의 29번 국도와 887번 지방도 따라 면앙정, 송강정, 명옥헌,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 풍암정으로 이어진다. 늙은 배롱나무들이 무더기로 피는 명옥헌은 8월에서 9월초까지 화산 폭발이 일어난 것처럼 온통 벌겋다. 소쇄원은 우리 나라 정원중의 백미다. 정원을 지은 양산보의 15대 손인 양재영씨가 살면서 관리하고 있어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두 정원은 반드시 들러야한다. 무등산 오르기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다.

우선 풍암정에서 원효계곡을 타고 꼬막재까지 오를 수 있다. 정자에서 곧바로 걸어 오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무등산의 백미인 입석대는 반대편에 있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방법은 원효사 근처 차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에서 내려 장불재에 오르는 것이다. 장불재까지 1시간 30분, 다소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이곳에서 내처 입석대와 서석대에 오르면 좋겠다. 서석대에 서면 광주호 근처 정자들의 밀집 지역이 아련하게 보인다. 무등산은 ‘어머니의 산’이란 별칭답게 온화하고 부드럽다. 조망 역시 탁월해 주변 산들이 장엄하게 펼쳐져 있다.

책과 인터넷 싸이트 / 시집 「대꽃」, 최두석, 문학과지성사: 최두석의 시에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을 ‘이야기 시’라고 부른다. ‘대꽃’ 연작시들과 유년에 기억을 담은 ‘담양장’이 좋다. 시집「게 눈 속의 연꽃」, 황지우, 문학과지성사: 시인이 서울을 떠나 광주와 명옥헌 등지에서 머물며 썼던 시들이 많다. 상대적으로 시인의 다른 시집 보다 남도의 정서가 많이 반영되어 있다. 「소쇄원 시선」, 광명문화사: 소쇄원을 배경으로 쓰여진 김인후, 정철, 송순 등의 시들을 종합적으로 모았다. 특히 김인후의 <소쇄원 사십팔영>을 읽으며 시의 배경을 하나하나 밟아 보는 것도 좋다.

책은 소쇄원에서 팔고 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1」, 유홍준, 창작과비평사: <담양의 정자와 원림>편. 각 정자와 원림들의 내력과 설명이 자세하다. 「답사여행의 길잡이- 전남편」한국문화유산답사회, 돌베개: <담양·무등산> 편에 정자들에 관한 상세한 정보가 잘 나와있다. 「김군의 수첩」(http://myhome.netsgo.com/kimnote/): 개인의 홈페이지로 광주 전남 지역의 상세한 여행 안내가 돋보인다. 무등산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부분과 ‘가사문학을 찾아서’, ‘장성 금곡 영화마을’, ‘다시 찾아본 정자문화’ 등의 주제별 안내도 좋다.

↑ 개념도

담양이 기점. 담양으로 가는 버스가 뜸한 곳은 광주, 장성, 순창을 경유한다. 자가용은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으로 나와 1번 국도를 타고 가다 15번 지방도를 갈아탄다. 명옥헌은 고서면 산덕리에 있다. 담양에서 29번 국도를 타고 가다 고서삼거리에서 창평 혹은 광주댐 방향으로 좌회전. 다시 고서면 사거리에서 창평방향으로 직진. 버스는 담양에서 일단 고서면으로 갔다가, 창평행으로 갈아타고 산덕리에서 내린다.

식영정, 환벽당, 소쇄원은 고서면 사거리에서 광주댐 방향으로 우회전. 3곳의 정자는 가까운 곳에 몰려있으므로 소쇄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 다니는 것도 좋다. 풍암정은 환벽당에서 광주 방향을 가는 길목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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