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등성이 솔밭 속에서 한 여자를 만나는 것으로 전상국의 장편소설 「유정의 사랑」은 시작된다. 주인공은 ‘유정’과 ‘하리’, 그들은 제각각 금병산(657m)을 오르는 중이었다.
금병산은 1937년 30세의 나이에 폐병으로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의 고향 실레마을을 품고 있는 산이다. 예사롭지 않은 배경을 통해 짐작하겠지만 이 작품은 소설가 김유정에 관한 소설이다.
김유정과 같은 해, 28세로 비명횡사한 모더니스트 ‘이상’이 쓴 「김유정- 소설로 쓴 김유정론」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은 것 같다. 작품의 구성은 액자구조를 띠고 있다. 액자 밖은 현대의 인물인 유정(김유정과 이름이 같다)과 하리의 사랑이야기, 액자 안은 김유정과 그가 짝사랑했던 기생 명창 박록주의 이야기가 중심 축을 이루고 있다.
산을 오르는 젊은 남녀의 우연한 만남, 그리고 자연스러운 동행! 산을 다녀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은 상상해 보았을 것이다. 그러한 생각으로 설레던 때가 언제였던가. 진주행 통일호 막차를 타고 홀로 지리산에 다니던 시절, 옆자리에 누가 앉을 것인가는 각별한 관심사였다. 나의 애틋한 기대는 군인, 할머니, 후욱! 술 냄새 풍기며 골아 떨어진 중년 사내…, 대개가 그런 사람들로 처참하게 무너졌었다.
산에서 만난 남과 여
그러던 어느 날 정말로 젊은 여자가 다소곳이 앉아있었다. 틀림없이 그 옆이 내 자리였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짐칸에는 그녀의 것으로 보이는 늘씬한 배낭이 먼저 자리잡고 내 뚱뚱한 배낭을 반갑게 맞았다. 얼굴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기쁨을 꾹 참고 자리에 앉았다. 남원에 이르러서야 겨우 말을 붙였던 것 같다. 그녀는 모처럼 휴가를 받아 지리산을 종주하고 제주도로 건너간다고 했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의 계획대로 그녀는 뱀사골, 나는 성삼재로 흩어졌다. 소설에서 유정과 하리는 우리처럼 얼떨떨하게 헤어지지 않는다. 유정은 하리의 첫 느낌을 ‘들판의 딸’로, 하리는 그를 ‘떠도는 영혼’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정도면 ‘운명적 만남’이란 말을 써도 되지 않을까. 그 후 두 사람의 데이트는 춘천과 홍천의 산으로 줄기차게 이어진다. 금병산, 검봉산, 삼악산, 연엽산, 오봉산, 치악산, 팔봉산, 석파령(席破嶺) 옛길, 구절산…. 이 산들을 모두 가볼 수는 없는 일. 그 중 가장 한적하고 신선한 두 곳을 골라내기란 쉽지 않았다.
나의 고향은 저 강원도 산골이다. 춘천읍에서 한 이 십리 가량 산을 끼고 꼬불꼬불 돌아 들어가면 내닫는 조고마한 마을이다. 앞뒤좌우에 굵직굵직한 산들이 빽 둘러섰고 그 속에 묻힌 아늑한 마을이다. 그 산에 묻힌 모양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야 동명을 실레라 부른다. - 김유정, <오월의 산골짜기> 김유정을 찾아 실레마을로 가는 길은 참으로 쓸쓸했다. 그의 생가를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었고, 차에서 내려 물어본 사람조차 김유정을 아는 이가 드물었다.
김유정과 함께 강원도의 대표적 작가로 불리는 이효석이 봉평에서 누리는 인기를 생각하니 마음이 더욱 심난하다. 우리가 오해하고 있듯이 김유정의 문학은 식민지 시대의 ‘평화로운 전원문학’, ‘해학적이고 토속적’인 경향만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해학 뒤에 찾아오는 뜻밖의 찌르는 듯한 비애에 주목해야 한다.
대표작으로 알려진 <동백꽃〉에서는 소작농의 아들을 향한 마름의 딸 점순이의 공격성이 숨어있었고, 〈소낙비〉에서는 이주사에게 겁탈을 당하면서도 뒤에 돌아올 금전을 생각하며 뿌듯해 하던 춘호처의 입장이 예사롭지 않았다. 마을에는 김유정 문학관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미 완성된 정자와 초가집만으로도 충분해 보이는데 대리석으로 만든 거대한 건물이 지어지고 있었다. 춘천시의 때늦은 관심이 탐방객에 대한 세세한 배려보다는 거대한 외형에 치우치게 만들었던 것이다. 김유정은 우리 문학사에서 혜성처럼 등장하여 긴 꼬리의 빛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가 본격적으로 빼어난 단편들을 썼을 때, 그에게는 오직 문학밖에 없었다. 부유한 집안은 쑥대밭이 되었고, 그가 끔찍하게 짝사랑했던 기생 박록주는 유정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당시 그의 폐는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다.
팔봉산과 석파령
북한강 수계에는 유독 ‘천(川)’자가 붙은 지명이 많다. 화천(華川), 춘천(春川), 홍천(洪川)이 대표적인데 그 중 가장 아름다운 이름은 춘천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봄내, 봄강, 봄물이 된다. 틀림없이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시인이었을 것이다. 북한강에 삼악산이 우뚝 솟았다면 홍천강에는 팔봉산이 울퉁불퉁 솟구쳤다.
유정과 하리가 팔봉산을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두 사람은 팔봉산을 오르려 왔지만, 산행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생긴다. 사랑병에 걸린 것이다. 그 병은 사랑을 고백하지 않고는 마음이 불안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런 증세를 보인다.
‘어이할거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꾀꼬리처럼 울지도 못할 기찬 사랑을 혼자서 가졌어라!’ 유정의 사랑 고백을 받은 후, 느닷없이 하리의 머리 속에서 떠오른 시구절이다. 주인공들이 가지 못한 산을 대신 오른다. 길은 유순한 강물을 두 쪽 내려는 듯 가파르게 내리 꽂힌다. 팔봉 중 2봉에는 유장한 홍천강 줄기를 바라보며 ‘삼부인당’ 당집이 서있다.
이 당집은 인근 주민들의 안녕과 질병, 풍년과 흉년을 주재하는 세 여신을 모신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무려 400년 전부터 3월과 9월 보름에 당굿을 벌였다고 하니 팔봉산의 영향력을 가히 짐작하고도 남겠다. 전상국은 참으로 산을 좋아하는 작가다. 그 많은 산들을 모두 섭렵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주인공들을 산으로 데려오겠는가.
더욱이 춘천에서 서울로 가는 옛길인 석파령이 나오는 대목에서는 화들짝 놀랐다. 예전 춘천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 신연강(薪延江·당시의 북한강 이름)을 건너야했다. 그리고 덕두원(德斗院)에서 석파령을 넘어 당림리로 가는 게 통로였다. 이 고개는 삼악산 줄기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석파령이란 이름은 옛날 신구관이 이곳 고갯마루에서 만났는데, 마침 돗자리가 하나라 찢어서 나누어 앉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의 눈물을 흘렸다.
신임은 고개가 험해 힘들어서 울고, 구임은 고을살이를 해 보니 살기 좋고 인심이 좋아 떠나기 섭섭하여 운 것이다 6.25전 근년까지는 석파령지(席破嶺地)라고 새긴 돌비석이 이 고갯마루에 세워져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임도가 뚫리면서 사라져 버렸다. 이름 모를 옛사람들이 걸었던, 그리고 작가와 소설의 주인공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고개를 넘는다.
전상국이 김유정을 소설 속에 끌어 들여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인간의 사랑’에 관한 보편적 질문이다. 특히 남녀의 사랑, 사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의 그 설렘. 인생에서 그 보다 풍요롭고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 것인가. 소설은 하리의 일기 첫머리의 기록으로 맺는다. ‘사랑은 진행형일 때만 아름답다’ <글|진우석 사진|장병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