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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문경새재,계립령

달빛그림자 2009. 12. 11. 00:46
 

 

문경 새재와 계립령
▒ 김주영의「객주」와 신경림의「새재」를 따라 넘는 새재와 계립령

고속도로에서도 ‘길의 서정’이 들려올 수 있을까? 가령 김동리 「역마」의 산협(山峽) 길에서 흘러나오는 아름다운 근친의 사랑이나, 이효석의 「메일꽃 필 무렵」에서 들려오는 물레방앗간 이야기가 요즘의 포장된 도로에서도 솟아나올 수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가 근대(Morden)로 들어오면서 인간의 교통수단에도 혁명이 일어난다. 지금은 철학의 고전으로 자리잡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공산당 선언」에서는 ‘생산수단과 교통수단이 급속하게 개선됨으로써, 가장 미개한 민족을 포함하여 모든 민족이 문명화’ 된다는 대목이 나온다.

교통수단의 발전은 자기 민족은 물론 미개한 타민족까지 문명화를 촉진시킨다는 탁월한 지적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철도가 뚫리고 자동차가 등장하면서 우리 민족 역시 문명화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그러나 교통수단의 발전은 도부꾼(장돌뱅이, 보부상)들의 몰락을 초래한다. 아울러 유랑(流浪)하는 사람들의 슬픈 이야기 역시 아스팔트 속에 매장되고 만다. 아스팔트 위에서 ‘길의 서정’은 불가능하다. 차로 달리며, 여관에 묵으며, 타인을 만나지 못하고 어떻게 애잔한 이야기가 흘러나올 수 있겠는가.

사라진 ‘길의 서정’

우리들은 문학이나 예술을 통해서 옛 사람들의 ‘길의 서정’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신경림의 시집 「새재」, 「길」이 ‘길의 서정시’라면, 장편 역사소설 김주영의 「객주」는 유랑하는 도부꾼들의 슬픔, 조선조 도부꾼들의 폭력과 계략이 숨돌릴 틈 없이 전개되는 ‘길의 서사시’라 할만하다.

그 무대는 문경 새재를 시작으로 서울은 물론, 남으로 경주·하동·군산·강경, 북으로 평양·원산에 이르기까지 혈관처럼 뻗어 있는 이 땅의 크고 작은 길들이다.

따라서 소설은 지도를 보며 주인공들이 걸어간 길을 더듬어봐야 제맛이 난다. 특히 1권은 지도가 없으면 주인공들의 행방이 묘연해지고, 나아가 소설의 큰 맥락을 놓치게 된다. 이번 산행은 1권의 주인공들이 도주했던 길을 쫓아간다. 충주 고사리∼새재(3관문·鳥嶺關)∼동화원휴게소∼북암문터∼지릅재∼미륵리(미륵사지)∼하늘재∼관음리(문경)가 그것이다.

이 길은 무려 세 번(새재, 북암문터, 하늘재)이나 백두대간을 넘는 고갯길이다. 아울러 새재(鳥嶺·632m)는 조선시대에 건설된 영남대로(嶺南大路) 중 가장 유명한 길이며, 지릅재와 하늘재는 계립령(鷄立嶺)이라 불리던 신라시대 때 국도다. 따라서 이 코스는 든든한 역사의 무게와 애잔한 문학의 서정이 어우러지는 최고의 고개 답사가 된다.

「객주」- 길의 서사시

신선봉(神仙峯·968m)의 수려한 기암들로 둘러 쌓인 고사리(古沙里). 이곳에는 이화여대 수련원과 조령산 자연휴양림이 자리 잡았다. 마침 상주여상 학생들이 무더기로 소풍 와 마을이 왁다글닥다글하다. 이곳에서 장편역사소설 「객주」가 발원한다. 경기 송파장(松坡場)의 으뜸가는 쇠살주였던 보부상 행수 조성준과 천봉삼 등은 조성준의 도망친 아내와 정부 송만치의 살림집을 습격, 린치를 가하고 도주한다.

새재 3관문인 조령관까지 포장된 길을 버리고 한적한 자연휴양림 길을 따라 간다. 몸이 좀 풀리나 싶은데 벌써 3관문인 조령관이다. 이곳이 새재의 고갯마루다. 조령산(1017m)에서 달려온 백두대간은 조령관을 굽이쳐 마역봉(마패봉·940m)과 부봉(935m)을 거쳐 하늘재로 흐른다. 첫 번째 백두대간을 넘은 것이다.

관문 왼편에 조령약수를 떠 마시니 달고 시원하다. 비록 세월이 흘러 고개 주변은 많이 변했지만, 물맛만은 그대로다. 소설의 조성준 일행은 3관문을 지나 동화원에서 새재 길을 버리고 마역봉 북암문터 고갯마루를 넘는다. 상초리(상푸실)와 혜국사 갈림길에 산적들이 지키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고, 무엇보다도 사람들의 눈을 피하자는 심산이다. 소설 「객주」의 가장 큰 의의는 격동하는 19세기 상인들의 세계를 문학적으로 복원했다는 것이다.

김주영 특유의 ‘박물지적(博物誌的)’ 지식, 치밀한 저잣거리 묘사, 능숙하게 다루는 서민들의 언어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제물포 안산(安山) 바다에 그물로 곱게 올린 밴댕이란 것이 장에 나오면 그놈을 사다가 석쇠에 구울 제 기름간장을 바르면 냄새가 삼이웃에 진동하것다요. 그러면 상추의 물기를 탈탈 털고는 손바닥 위에 쩍 벌려 눕히고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올벼 쌀밥 한 숟갈을 사정두지 말고 듬뿍 떠서 담고 벌꿀 같은 된장을 얹은 뒤에 구워진 밴댕이나 밴댕이젓갈을 올려 정들여 쌈을 싼단 말씀이오.

그러구선 혜임령(惠任領) 황아장수 짐들어올리듯 입을 쩍 벌리고 숨을 푹 내쉰 다음에 두 손으로 들어올려 입안으로 밀어 넣는데 그때 옆에 앉았던 책상물림이 같이 따라 입을 벌리다가 짧은 갓끈이 뚝 떨어졌다는 것이 이 밴댕이젓쌈 때문이란 것을 아시겠소?” (2권 25쪽) 강경 저자에서 밴댕이 젓장수가 아낙을 꼬드기는 장면이다. 이 대목은 서민들 특유의 해학은 물론 양반에 대한 풍자도 은근하다. 이 장면에서 19세기 상업이 발달함에 따라 흔들리는 신분제도를 짐작하는 것도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이제 다급해진 최가는 지체없이 계집에게 달려들었다. 식으려던 육허기(肉虛飢)가 일시에 동하였다. 쐐기를 박자, 계집은 금방 자지러지면서 최가의 상투를 휘어잡고 늘어졌다. 머리를 들면 아래로 당기고 아래로 당겨들면 위로 발짝 메쳐서 상투는 상투대로 놀고 육신은 또 따로 할 일이 있었다 .(1권 48쪽)

당시 도부꾼과 서민들의 성(性) 모럴은 아무런 가식이 없었다. 도부꾼들은 돈이 생기면 막창이나 논다니(노는 계집)를 샀고, 주머니가 비었을 때는 주막 봉노에서 비역질(남자끼리 하는 성행위)을 하기도 했다. 지금의 여관 기능을 하던 동화원(東華院) 자리에는 동화원휴게소가 자리잡았다. 예나 지금이나 길손들은 쉬었다 가야하기 때문이다. 동화원에서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하는 지릅재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백두대간을 넘어야 한다.

이곳이 북암문터다. 오르는 도중, 옛 동화원 흔적으로 보이는 자리가 여러 군데 눈에 띈다. 이것으로 보아 동화원의 규모는 상당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길은 잘 나있고 북암문터까지 30분이면 닿는다. 멀리 월악산 영봉과 중봉이 아련하게 잡힌다. 북암문터를 지나면 두 번째 백두대간을 넘게 된다. 고갯마루를 내려가는 길은 참 예쁘다. 참나무 연초록 새순들이 햇빛을 퉁겨 내고, 물 건너는 계곡에는 징검다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소설에서는 옛 길의 다양한 명칭이 나오는데 그 이름이 재미있다.

‘자드락길’은 나지막한 산기슭에 있는 좁은 길, ‘에움길’은 굽은 길, ‘안돌잇길’은 험한 벼랑길에 바위 같은 것을 안고 겨우 돌아가게 된 길, 등굽잇길은 등처럼 굽은 길. 예전에는 이러한 길들이 전국에 걸쳐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었을 것이다. 길마다 전설과 사연을 간직한 채. 「객주」를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은 조선 팔도의 특산물이나 별미를 간접적으로 맛볼 수 있다는데 있다. 김주영의 ‘박물지적(博物誌的)’ 지식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대목이다.

배천(白川)의 참기름, 영변(寧邊)의 홍미반(紅米飯), 북청(北靑)의 게장, 황주(黃州)의 세하젓, 해주(海州)의 도미국수에 비빕밤, 연안(延安)의 인절미, 평양(平壤)의 닭볶음에 어죽, 장단(長湍)의 밤떡, 송도(松都)의 보쌈김치에 식혜, 금강산의 잣박산, 청량리의 두견술, 경우궁의 된장찌개, 과천의 청참외, 자하문 밖 능금, 수원 용주사의 약과, 양주(楊洲) 백화암의 찹쌀튀각, 용문사의 두릅회와 취쌈, 봉선사의 전골, 광주(廣州)의 속댓국, 용인의 오이지, 회덕의 행채나물, 여주 남강의 쏘가리탕, 청주 갈비, 공주의 밀국수에 깍두기, 회암사의 간장, 서산의 뱅어, 칠갑산 고사리, 노성(魯城)의 게, 연산(連山)의 황계탕, 임실의 물감(水枾), 순창의 고추장, 법성포 굴비, 홍성의 어리굴젓, 강진의 유자청(柚子淸), 해남의 낙지회, 고흥의 고막, 광주(光州)의 애저와 무등산 푸렝이, 전주의 유과, 남원의 미나리, 금강의 송어회, 보성의 쓰레홍합, 창평의 생강엿, 풍기의 감(乾枾)… (2권 243∼234쪽)

고개가 끝나면 587번 지방도를 만난다. 여기서부터는 계립령 길이다. 지릅재 넘어 미륵사지가 있는 미륵리는 삼거리다. 597번 국도를 계속 따라가면 월악산 영봉쪽이고, 미륵사지를 지나면 하늘재로 통한다. 미륵사지는 산이 아닌 길가에 수수께끼처럼 남아있지만, 계립령이란 옛 길을 알면 금방 풀린다. 미륵사는 계립령 도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했고 당시 길손들을 위해 지금의 여관 기능까지 했던 것이다.

‘목계장터’- 모든 떠돌이의 노래

하늘재 들머리는 미륵사지를 지나 왼쪽으로 나있다. 길은 부드러운 비포장길이다. 길은 고갯마루까지 평탄했다. 시계를 보니 40분 걸렸다. 하늘재 고갯마루를 넘으면 문경 땅이고 이곳은 5년 전에 포장됐다.

이로써 세 번째 백두대간을 넘은 것이다. 다음날, 문경읍에서 다시 새재를 찾았다. 기자가 예전에 새재를 찾았을 때, 제1관문 지난 지점에서 어떠한 강렬한 인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말로 설명할 수 없었던 그 기억이 다시 나를 이쪽으로 이끈 것이다. 고개를 들어 저 멀리 솟아 있는 산들을 바라본다.

아련한 실루엣으로 보이는 조령산, 마역봉, 부봉의 백두대간 줄기들. 그래 저것이었다. 그때 저 험악한 산줄기들이 내 마음속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 옛날 새재를 넘던 나그네 또한 그랬을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험악한 산줄기와 새재 고갯마루를 바라보며 긴 한숨을 토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았을 것이다.

당시 기자가 느꼈던 강렬한 인상은 옛날 나그네들의 슬픔이 그대로 나에게 전달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전이는 ‘역사적 연속성(관성)’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 때 기자는 ‘문학청년’이었다. 가장 감수성이 풍부했던. 결코 돌아올 수 없는. 그제야 신경림의 ‘목계 장터’가 어떤 시인지 짐작하겠다. 이 시는 목계 장터를 떠난 간 사람들의 슬픔뿐만 아니라, 고향을 잃고 떠도는, 나아가 모든 방황하는 영혼들을 위한 헌사였다.

역사의 무게, 문학의 서정 김주영의 「객주」는 총9권인데, 그 중 1부 3권은 읽어야 한다. 시간이 없다면 1권만이라도 정독한다. 신경림의 시집 「새재」와 「길」은 배낭에 넣고 시간 나는 대로 읽는다. 충주 고사리∼3관문∼동화원∼북암문터∼지릅재∼하늘재∼관음리(문경)는 12킬로미터 이상이며 총7시간 소요된다. 이 코스는 문경새재도립공원과 월악산 국립공원을 연결하는 산행이며, 백두대간을 세 번 넘는 새재와 계립령 고개답사다.

산행 시작은 소설의 주인공들을 따라 고사리로 잡거나, 문경쪽 새재 제1관문을 지나 동화원에 이른 후, 위 코스를 따르면 된다. 산행에 주의할 점은 동화원과 하늘재의 들머리를 찾는 것이다. 동화원휴게소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다. 부봉으로 향하는 오른쪽 길을 버린다. 현대식 가옥을 왼쪽에서 끼고 돌아 쓰러진 잡목을 이정표 삼는다. 하늘재는 미륵사지에서 왼편으로 난 길을 따라가다 나타나는 ‘입산금지’ 푯말이 이정표다. 푯말 왼쪽으로 내려가는 비포장길이 하늘재 들머리다.

↑ 개념도
충청북도 충주 고사리를 기점으로 삼으면 수안보로, 경상북도 문경 하초리 제1관문이 기점이면 문경읍으로 가야한다. 수안보는 동서울터미널(☎446-8000)에서 1시간 간격이며, 첫차 06:40 막차 18:40. 고사리는 수안보 공용터미널에서 07:50, 09:30, 11:15, 12:00, 14:30, 16:20, 17:45, 18:20분에 있다. 문경읍은 동서울터미널에서 점촌행을 탄다.

30분 간격이며 첫차 06:20, 막차 18:30. 문경읍에서 새재도립공원 가는 버스는 첫차 07:15에서 막차 18:50까지 수시로 있다. 산행이 끝나는 하늘재에는 대중교통이 없다. 지나가는 자가용을 잡아타고 문경읍까지 나오거나 갈평에 이른 후, 버스를 이용한다.

고사리에서는 신선봉가든(☎043-833-0196)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다. 이곳 김복순 할머니는 오지탐험가 한비야씨가 묵어 갔다고 자랑하는데, 인심이 후하다. 또 조령산자연휴양림(☎043-833-7994)을 이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방은 3∼4만원 선이다. 문경쪽 하초리에는 여관과 식당이 많다. 산행 후에는 문경읍에 위치한 문경온천(☎054-572-3333)에서 몸을 담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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