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문학예술기행은 '사랑의 길' 두 개를 더듬는 것이다. 하나는 김동리의 단편소설 『역마(驛馬)의 주인공 성기와 계연이 걸었던 길이다. 그 길은 화개에서 쌍계사 근처까지의 아름다운 숲길로 두 사람을 사랑에 빠지게 한다.
다른 하나는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인공 구천이(김환)와 별당아씨가 야간도주했던 길이다. 그 길은 평사리 고소성에서 형제봉(1115m)을 거쳐 지리산으로 들어가는 험난한 길이다. 두길은 공교롭게도 이루어질 수 없는 '근친의 사랑'이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계연은 성기의 배다른 이모였고, 별당아씨는 구천이의 의붓형수가 된다.
또 두길은 확연한 차이점을 갖 고 있다. 그것은 근친을 사랑하게 된 주인공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의 차이다. 아름다운 숲길을 걸어간 성기와 계연은 '운명의 덫' 앞에 순순히 사랑을 포기하고 만다. 반면 구천이와 별당아씨는 지리산으로 야간도주함으로써 근친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사랑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왜 화개에서는 일그러진 사랑 이야기만 나오는 걸까. 혹시 예로부터 장터가 열렸던 화개라는 공간적 배경이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닐까.
문학예술기행은 신선한 시각을 바탕으로 발(足)로 사유하는 행위다. 신선한 시각은 문학 텍스트에서 나온다. 따라서 작품을 꼼꼼하게 읽는 것이 으뜸이다. 김동리의 『역마』처럼 소설적 상상력이 화개와 쌍계사라는 현실적 공간과 행복하게 만나는 경우도 드물다. 화개에서 쌍계사까지 십리 길은 언제 걸어도 좋다. 옆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 무엇 하리. 성기가 머물렀던 쌍계사를 둘러보고, 불일폭포까지 산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칠불사 는 자가용이 있다면 한번 가볼만 하다. 박경리의 『토지』는 이번 기회에 16권 모두를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평사리를 답사하는데 1부만(총 3권) 읽어도 무방하다. 평사리 답사의 핵심은 고소성과 조부잣집이다.
고서성을 거쳐 통천문∼봉화대∼신선대∼형제봉을 거쳐 청학사로 하산하는 산행코스도 좋다. 총 6시간 소요되며 능선상에 물이 없으니 미리 준비한다. 청학사로 하산하여 정서리에 있는 조부잣집을 둘러본다.
조부잣집 조한승씨(74세)는 최근에 집을 보수하여 우리에게 한옥집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답사객들이 끊이질 않아 귀찮을만 한데도 반갑게 맞아주신다. 『토지』에 나오는 조준구와는 딴판이다. 말만 잘하면 고택에서 재워주기도 한다. <글 진우석 기자 사진 서준영 기자> |